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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 13. 21:56

지난 2월 5일 음력으로 새해 첫날 까미가 떠났습니다. 

2002년 아마도 9월쯤에 태어났을 까미는 2019년 2월 5일 조금은 흐렸던 오후에 영원히 저의 곁을 떠났습니다. 까미는 2018년 7월에 갑자기 걷지 못하게 되면서 음식도 삼키지 않아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개복 수술로 주먹만한 종양을 제거한 뒤 느리게 회복하다가, 8월 한달쯤은 눈에 띄게 호전되어 그런 까미를 보면서 저는 헛된 희망을 품기도 했습니다. 까미가 스무살까지 살 것만 같았습니다. 결과적으로 7개월간의 투병은 까미에게 힘든 시간이었을 겁니다. 생명이있다면 누구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요. 까미를 지켜보는 건 아주 지루하게 꺼져가는 촛불을 바라보는 일과 비슷했습니다. 삶의 기운이 어느날 한 계단쯤 오르면 그 다음엔 두 계단쯤 내려가는 식이었으니까요. 1월엔 까미의 상태가 다시 좋아지는듯 했습니다. 봄이 되면 같이 볕을 쬐러 잔디밭으로 산책을 나갈수도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설 연휴가 시작되던 금요일 한달만에 까미를 보러간 바로 그 다음날부터 까미의 상태는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없던 구토와 경직, 쇼크 상태를 보였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점점 호흡이 힘겨워보였습니다. 그 사이 어떤 결심에 대해 계속 생각했습니다. 미국은 수의사가 방문하는 시스템이 있어서 집에서 편안히 떠날 수 있다는데 왜 한국에서는 낯설고 차가운 병원 테이블 위로 데려가야 하는가 그런 생각들. 그러는 사이 저와 5일의 시간을 보낸 까미는 가족의 곁에서 영원히 떠났습니다. 언니도 엄마도 까미가 마지막 힘으로 저를 기다렸던 거 같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까미는 엄마, 언니, 저 우리가족 모두에게 둘러싸여 마지막을 보냈습니다. 죽기 전의 모습은 그리 평화롭지 못했지만, 고통을 끝내고 힘든 숨을 멈춘 까미가 마치 깊은 잠에 든 것만 같아서 품에서 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까미는 주어진 삶을 다 살았고, 중간에 헤어지는 불행 없이 온 생을 저의 곁에 있었지만, 까미가 없는 나머지 제 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까미는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펫로스에 대한 글도 보고 강연도 들으면서 몇년 나름대로는 준비를 해왔다고 여겼는데,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현실이라는 실감조차 나질 않습니다. 혼자 있으면 눈물이 멈추질 않고 두려워서 그냥 이렇게 모든 걸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아무 의욕이 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 또한 도저히 들지 않습니다. 무슨말을 해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 언니 그리고 엄마와 일주일간 지내면서, 제게 위로가 되어주는 애인과 연락하면서, 곧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고는 있지만, 잘 되지가 않습니다. 새해 첫날 저녁 까미를 포근한 이불에 싸서 언니 옆에 태우고 김포의 화장터로 향하는 길은 귀성길 차량에 섞여 매우 느리게 흘러갔습니다. 해가 넘어가고 주위가 온통 깜깜해지도록 우리는 길 위에 있었습니다. 까미의 앞발을 꼭 붙들고 있던 언니는 이제 너무 차가워졌다며 이불 속에 넣었던 손을 가만히 빼며 울었습니다. 제 옆에서 계속 눈물을 흘리던 엄마는 까미가 우리랑 같이 끝까지 오래오래 있으려고 오늘 떠났나보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이제껏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았는데, 막상 사후세계가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럼 그 많은 세월의 낮과 밤을 보내며 까미와 나눴던 감정은 서로의 마음은 그 모든 걸 고스란히 담고 있는 우리의 영혼은 대체 어디로 간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불과 어제까지도 죽음은 모든 신호가 끊어지고 비로서 평안의 상태가 되는 거라 여겨왔는데. 여태껏 살면서 이만큼의 혼란을 감당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불을 끄고 누워도 숨이 고르게 쉬어지지가 않으니 저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까미의 화장은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끝났습니다. 32키로였던 까미는 떠날 때엔 25키로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까미의 유골함은 봄까지 같이 지낼 생각입니다. 밖은 너무 춥기 때문입니다. 까미가 떠난 다음날엔 엄마와 언니와 같이 봉선사에 가서 초에 불을 켰습니다. 마침 대보름에 태우려고 높게 쌓아올린 달집이 있어 소원종이를 적은 뒤 밧줄에 묶었습니다. 옴마니반메흠 진언을 외며 달집을 돌았습니다. 제가 적은 소원은 더이상 아프지 않을 까미의 평안과, 남겨진 우리의 평화였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어쩌면 그때는 까미를 정말로 보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옆으로 누운 까미의 앞다리 사이에 끼웠던 제 손, 고스란히 전해지던 미세한 심박, 서서히 멈추던 그 신호가 아직은 제 손바닥에 남아있습니다. 이 글은, 까미 덕분에 제게도 과분한 마음을 주었던 여러분에게 쓰는 감사의 글입니다. 감사했습니다. 까미가 아니었으면, 받지 못했을 마음이었음을 잘 압니다. 까미에게 잘해주지 못한 기억이 매일 한번은 떠올라 저를 괴롭히지만, 여러분이 까미에게 주신 사랑 덕분에 까미는 행복했을 거라 생각하며 저도 위로를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그리고 영원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