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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5. 11. 21:25





56년 이른 봄, 명동의 한 대폿집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나애심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곳이 박인환 등이 자주 드나들던 경상도집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동방싸롱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술집 은성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모두 확실치 않다.
술을 마시던 박인환이 즉흥 시를 쓰자 옆에 있던 작곡가 이진섭이 그자리에서 곡을 붙였다.
나애심에게 부르기를 청했으나 그녀는 거절했고 송지영과 먼저 돌아갔다.
이후 명동백작 이봉구와 함께 술자리에 합석한 테너 임만석이 이 노래를 부르자,
밤이 깊은 명동의 대폿집 앞 골목에 지나던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듣고 모여들어 박수를 보냈다.

박인환은 이 시를 쓰기 전날 십년이 넘도록 방치해 두었던 그의 첫사랑이 묻혀 있는 망우리 묘지에 다녀왔다.
가슴속에 서늘하게 남아있던 그 눈동자와 입술이, 나뭇잎과 흙에 덮혀 사라져가는 것을 목도하였다.

이 곡이 완성되던 날 낮부터 취해있던 박인환과 이진섭은 단성사에서 상영중인 롯사노 브랏지와 캐서린 햅번 주연의 영화 여정을 보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다시 외상술을 마시며 이 노래를 불렀다.

사흘 뒤 화가 김훈에게 자장면을 한그릇 얻어먹은 박인환은 술에 만취한 상태로 잠을 자다가 서른 한살의 나이로 죽었다.
세탁소에 맡긴 봄 외투도 돈이 없어 못찾고 두꺼운 겨울 외투를 그대로 입은채였다.

그가 명동을 영영 떠나던 날 친구들은 담배와 조니워커를 그의 관 위에 부어주었다.

죽기 며칠 전 박인환은 술집 모나리자에 술값 대신 맡긴 만년필을 찾아다가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다'며 자신을 경멸했던 그의 친구 김수영에게 주고 갔다. 김수영과 박인환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가 시의 관점이 달라 김수영에 의해 일방적인 절교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