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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8. 19:41

동녘 출판사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번역 출간하는 데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고 알려졌다. 이 책이 원작자의 자전적 소설이고 어린 시절 학대의 경험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게 굴었다고 한다. 다른 언어로 쓰일 때 자신의 작품, 무려 어린 시절 학대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가 행여나 퇴색될까 봐 우려하는 작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애초에 작가는 한국과의 계약을 거절했다고 한다(동녘보다 먼저 접촉한 한국 출판사와 일이 틀어진 영향도 있다고 하나 자세히는 모르겠음). 그래서 동녁은 이 소설을 번역 출간하기 위해 브라질에 대해 잘 아는 남미 담당 외교관 출신의 번역가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작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설득하여 비로서 계약을 성사시켰다. 무려 90년대의 일이었다.


출판사의 유감문을 읽어 보았다. 소설 오독에 대해 사과하고 노래의 유통을 금지하라는 요구가 없었다는 점에서 저 정도 언급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생해서 출간한 책이니만큼 각별한 애정이 있어서겠지만, 몇몇 표현은 조금 우려가 들기도 한다. '제대로 읽었다면 이런 가사를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본다'는 부분을 독자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체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출판사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든 창작자가 사람들을 향해 무언갈 내놓았다면 그 뒤의 해석은 창작자의 손을 떠난다. '넌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미안하지만, 작품에 대한 애정을 넘어서 어떤 오만이 느껴진다. 하지만 출판사는 이미 이 책이 '수많은 제제들을 위로하기 위한 책'이라 단정하는 것 같다. 일단 제목부터가 '아이유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라니. 그렇게 따지자면 출판사가 원작자는 아니다. 이러한 오만은 아이유를 질타하는 독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은유는 은유일 뿐이다. 의외로 사람들은 창작물에서 나타나는 성적 함의에 대해 몰랐나 보다. 내가 잘은 몰라도, 이런 식이라면 문학의 1/3정도는 사과해야 한다. 모든 것에 성적 함의를 씌우는 것만큼이나 모든 은유를 검열하는 것도 멍청하고 끔찍한 일이다. 누군가들은 성적 비유나 은유는 창작에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이유의 <제제>가 페도필리아를 자극하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한다. 내가 아이유도 아니고 아동범죄전문가도 아니라서 확신하기 힘들다. <제제>를 들어 본 후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기에 아이유가 만드는 콘텐츠는 페도보다는 나르시즘이다.

물론 소아성애는 취향도 페티시도 아닌 범죄이기 때문에 어떤 창작물이 명백하게 페도 성향을 보인다면, 공론화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유의 <제제>가 페도인가?


페도라고 주장하며 아이유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학대받고 불쌍한 소설 속 아이에게 '섹시하고 영악하다'는 표현을 쓴 것만 보이는 듯 하다. 미성년자때부터 대중 앞에 섰던 창작자 아이유의 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이 그리고 각별한 나무 그 둘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며 어린 아이가 가진 양면성을 상상해낼 수 있다는 걸 인정할 순 없나.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을 외치던 아이유가 스물 셋이 되었다. 뮤직비디오에서 젖병을 물고 가슴에서 사과를 꺼내는 아이유는 지금까지 당신들이 날 어떻게 소비하고 있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걸 대놓고 말하는 듯 보인다. 영악하기도 하고 섹시하기도 하고 분명히 어리지만 어른이기도 한 자기 자신.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다고 말하지만 분명히 롤리타 콘셉트로 성적 어필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이번 스물셋 앨범에서 나르시즘을 통해 일면 서툰 방식으로 터진 것 같다. 롤리타를 자의로 했든 타의로 했든 나는 롤리타로 팔리는 사람인데, 난 그게 마음에 들면서도 들지 않아 그래서 어쩔 건데. 뭐 이런 느낌. 내가 아이유 전문가는 아니라서 여기까지.


관찰자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사건(?)에는 두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아이유에게 '순진한 줄 알았는데 점점 영악해져서 싫다'고 평가하는 부분. 보통 나이 어린 남자 가수나 배우한테는 안 쓰는 표현인데, 어리고 귀여운 여자가 '아무것도 몰라요' 상태로 남아 있어 주지 않는 것을 불편해 하는 시선을 향해 아이유가 기대에 부응해 주지 않고 자기 주장을 하면서 통제 밖으로 나가며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게 묘하게 통쾌하다. 십대부터 사회생활 시작한 스물 넘은 성인 여성이 계속 어리숙한 꼬마 상태면 그건 귀여운 것이 아니라 멍청한 거다.

두 번째는, 아이유의 <제제>가 페도라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마틸다를 연상시키는 초크를 착용하고 섹시미를 발사하는 성인 여자들이 넘쳐나는 요즘 어떤 불편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틸다는 미성년자 여자 아이, 그의 곁에는 묘한 은유와 상상을 자극하듯 그 아이를 지켜주는 늙은 남자 레옹이 있다. 영화 속 설정이니 괜찮을까? 그렇다면 더 다행이지 않은가. 제제 또한 실존 인물이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