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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10. 02:28

피곤한데도 잠은 잘 안오고 기분이 조금 붕 뜬다
야구 정치 농담 마구잡이로 수다를 떨어봤는데 별 소용도 없구.
그 어떤 먼지도 나의 색을 바꾸지는 못할거라 믿으며 나는 내일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간다
의도와는 자꾸 어긋나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하드코어 인생일지라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해야겠다




-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든 끊어져 나는 오래 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기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나는 경악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센 기억들을 품고 있다. 기타 소리가 멎으면 더듬더듬 나는 양초를 찾는다. 그렇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도 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1989.5 기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