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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1. 03:02
「VOGUE야」

VOGUE야 넌 잡지도 아냐
섹스도 아냐 유물론도 아냐 선망조차도
아냐 선망이란 어지간히 따라갈 가망성이 있는
상대자에 대한 시기심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는
선망도 아냐

마룻바닥에 깐 비니루 장판에 구공탄을 떨어트려
탄 자국, 내 구두에 묻은 흙, 변두리의 진흙,
그런 가슴의 죽음의 표식만을 지켜온,
밑바닥만을 보아온, 빈곤에 마비된 눈에
하늘을 가리켜주는 잡지
VOGUE야.


1967.2 김수영




이 시가 몇년 전 한국판 <보그>지의 광고전략으로 사용되었던 것, 혹은 된장녀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설명하는데에 쓰였던 것 모두에 나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글을 쓰는 김수영은 자신이 쓴 시를 일본잡지에 발표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눈물이 날 지경으로 감격'하였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는 일기에 '불어도 배우자. 부지런히 배우자. 불란서 잡지를 주문해서 참고로 하자.'라고 쓸 정도로 외국잡지에 민감하였다.
그 감격은 자신의 작품이 국경을 넘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을테고 이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꿈일테니, 당연하게도 글 쓰는 김수영이 외국잡지에 대해 배타적인 결론을 지을 이유가 없었을 것으로 나는 추측한다.
다만 한국전쟁을 겪고 난 김수영에게서는 박인환이 그러했듯 '외국문물에 젖은 모더니스트'적인 단어나 구절을 찾아볼 수 없었다. 김수영은 그게 가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대신에 "우리 문학이 일본 서적에서 자양분을 얻었다고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본을 통해서 서양문학을 수입해왔고, 그러한 경우에 신문학의 역사가 얕은 일본은 보다 더 신문학의 처녀지인 우리에게 중화적인 필터의 역할을 (물론 무의식으로) 해주었다" 고 적을 정도로, 일본문학을 필터로 인식하는 생각 자체가 박인환에게는 없었던 균형감각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즈음 쓴 시가 바로 「VOGUE야」였다.
몇해 전 지방의 출장지에서 식은 도시락을 먹다말고 곧장 샤넬 런칭쇼에 가야했을 때 구겨진 컨버스 운동화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나는 이 시를 떠올렸다. 일을 마친 뒤 그날 쇼에서 소개된 신제품 아이섀도우가 든 각잡힌 쇼핑백을 받아들고 환호할 이유도, 서글플 필요도 없는 균형감각이 바로 나에겐 이 시였다.
내가 당장 갖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속물적 사치라고 덮어놓고 욕하는 것은 스타벅스에 앉아있는 여자들은 모두 된장녀라고 욕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겠지만, 그것이야 말로 서글픈 일. 그렇다고 하루 10시간씩 백화점 매장에 서서 일한 댓가로 일당 4만원을 받으면서 애인에게 줄 200만원짜리 양복을 아무렇지 않게 사들고 가는 여자를 보는 것도 서글픈 일이다.  
태어나 모든걸 갖는 사람은 이건희도 아니고(스스로는 더 갖고픈 것이 있을테니) 그 누구도 아닐텐데, 다만 나를 둘러싼 한계를 어떤 경로로 넘어서느냐에 대한 균형감각을 김수영은 이미 40년 전에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