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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2. 19. 04:04


_시화전 '안개는 들의 아래로'의 시작.

○○과 만나 이별의 암시를 하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내가 대했던 많은 대화들에 대하여 그녀의 슬픔이라는 몇 줄의 눈물로 보상받는 꼴이 되고 말았다. 오, 또 이렇게 되고 말았다. 언제나 나는 진실로 연애다운 사랑을 할 것인가. 통나무집에서 그녀가 키스를 요구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병신같은 계집애.

'먼 훗날 당신의 첫 남자가 깨끗한 추억으로 서 있기를..... 당신의 성숙기에 한 개의 방향표지처럼 서 있는 나'를 기억해달라고 했다. 어차피 헤어질 우리라면 네가 가까이 올수록 나를 접근할 수 없다고. 나에게서 네가 어떠한 확신(키스거나 밀어)을 얻으려는 너의 태도는 네가 아주 자신감이 없거나 성급히 우리 관계의 어떠한 결말을 재촉하는 것이 된다고 했다. 혐오감과 동정.



지난 81년 겨울'하얀집'(라면집)의 김○○씨가 생각났다. 나에게 파카를 벗어 준 머리가 길고 담배를 즐겨 피우던 키 큰 여자. 추호의 더러움도 느낄 수 없는 여자. 추워서 남쪽으로 내려왔다던 여자. 봄이 되면 다시 서울로 올라 가겠다던 여자. 그리고 그 해 겨울이 막 시작할 때(12월 20일경) 말없이 라면집을 그만둔 여자. 그래서 내가 그후로 못 만난 여자.
"옷 주셔야죠?"
"아, 그렇군요. 너무 따스해서 나는 내 살인 줄 알았어요."

그 여자. 내가 지금 추억만으로서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상현달 같은 여자.



기형도, 참회록 1982.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