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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5. 12:20

너는 카톡으로 차였다. 정확히 말해서 어제 새벽 상민에게 던진 카톡 메시지 폭탄 13개의 1이 오늘 아침까지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차단당한 것이 확실했다. 새벽 2시까지 이어진 말다툼 끝에 상민이 마지막으로 보낸 카톡은 이랬다. "됐고. 이제 그만 하자." 


너는 출근길 전철에 앉아 아무 알림도 오지 않는 스마트폰을 만지작댔다. 상민과의 카톡창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1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처음이었다. 상민과 사귀는 동안 너는 즉각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1로 인해 여러 번 다투었다. 연애 초기에 상민은 트위터에서 야구장에 난입한 고양이 사진을 리트윗하고 있으면서도 네가 보낸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곤 했다. 스마트폰 푸시 알림의 내용 미리보기를 통해 대충 보고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것인지, 아예 너의 카톡을 씹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너는 그럴 때마다 상민에게 조금의 시간도 주지 않고 트위터 계정으로 곧바로 쪽지를 보내 따져 물었다. "왜 내 카톡 확인 안 해? 트위터 할 시간은 있고?" 상민은 그럴 때마다 너에게 뻔한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숫자 1이 즉각적으로 사라졌고 너는 안심했다. 


상민도 너처럼 언제나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므로 상민도 너처럼 어디에든 반드시 있었다. 카톡에 없으면 트위터에, 트위터에 없으면 페이스북에. 페이스북에 없으면 너는 인스타그램에 있었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너와 상민은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오직 서로의 행방을 알 수 없는 것은 잠자는 시간 동안만이었다. 하지만 상민이 마지막으로 올린 트윗과 카톡 점검 시간에 대비해 깔아놓은 텔레그램 메신저가 알려주는 마지막 접속 시간을 통해 상민이 잠자기 직전까지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너는 텔레그램을 거의 쓰지 않지만, 상민은 동창 남자 무리들과 만든 텔레그램 단톡방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같은 방법으로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너는 상민이 어디에 있는지 또한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너에게 잠이라는 건 로그오프 내지는 전원 꺼짐과 같은 상태였다.


너는 상민과 사귀는 내내 그런 패턴에 익숙했다. 카페에 가서 마주 앉아 있거나, 나란히 소파에 기대 상반신을 묻고 절반쯤 누워 있을 때에도 각자의 SNS를 확인하느라 몸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시선만은 각자의 스마트폰을 향해 있었다. 재미있는 최신 움짤을 발견하거나 귀여운 동물짤을 찾으면 서로 보여주며 낄낄대고 웃었다. 어떨 땐 너의 스마트폰 액정 화면을 상민의 얼굴 앞에 들이미는 것보다 상민에게 카톡으로 링크를 보내는 것이 편했다. 상민이 시선을 돌려 너의 폰을 보는 것보다 엄지손가락으로 너의 메시지를 터치하는 것이 빨랐기 때문이다. 술집에 마주 앉아 술을 먹을 때에도 옆자리 커플의 심각한 대화를 엿들으며 카톡 채팅창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저 남자 바람피웠음”, "헐, 여자 우는데?" 상민은 고양이에게 앞발로 공격당하는 개의 짤방을 찾아서 재빠르게 카톡창에 띄웠다. 너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너는 상민과 트위터에서 만났다. 몇 년 전 겨울 페이스북의 모 페이지 운영자가 주최한 게릴라 미팅 이벤트가 솔로대첩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플래시몹 행사로 열렸을 때, 각종 온라인 매체는 물론이고 몇몇 연예인들까지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결과는 무참히도 남녀 성비의 극단적 불균형으로 인해 온갖 짤방만 생산한 채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특히 솔로대첩을 기획한 남성 주최자가 수많은 남성 취재진의 카메라에 둘러싸이고 다시 그 취재진을 수많은 남성 참가자들이 둘러싼 사진 한 장은 기상천외한 드립 멘트와 함께 트위터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상민이 만든 것이었다. 상민은 그런 걸 아주 잘 만들었다. 이슈를 캐치해서 적절한 사진과 멘트를 조합해 퍼트리는 데에 탁월한 RT스타였다. 너는 상민과 맞팔 사이였고 가끔 시답잖은 멘션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그때 처음으로 상민에게 쪽지를 보냈다. 상민은 바로 답을 보내왔고, 너와 상민은 멘션 대신 쪽지를 주고받는 빈도가 잦아지다가 이모티콘 없는 대화에 아쉬움을 느낄 때쯤 서로의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카톡으로 밤낮없이 대화를 나눈 지 사흘째 되는 날 너는 상민과 만났고, 사귀기 시작했다. 너는 상민과 만나기로 한날 처음으로 상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상민과의 연애를 그 시작부터 회상하는 사이 너는 전철 환승구간에 도착했다. 상민의 1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불현듯 너는 상민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본다. 페이스북은 학교와 직장 사람들은 물론 가족까지 연결된 인맥 기반의 서비스라서 너와 상민은 친구사이이긴 하지만 서로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너는 남자를 만나 어디로 여행을 가고 밤늦게까지 무엇을 하는지 직장 상사와 이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서로의 게시물에 좋아요만 누를 뿐 리플은 전혀 주고받지 않았다. 너는 어쩌다 둘만의 데이트 사진이 너무나 올리고 싶을 때에도 상민의 얼굴은 올리지 않았으며, 당연히 태그도 하지 않았다. 상민은 언제나 너의 사진 속에서 함께 먹은 브런치 테이블 끝에 걸쳐진 팔뚝에 둘러있는 시계나 테이블 밑의 컨버스 운동화로 등장했다. 


아침 출근길에 너는 언제나 상민의 페이스북부터 들어갔다. 상민 또한 출근길에는 아침 주요 뉴스를 체크하며 관심 있는 기사를 짧은 코멘트와 함께 페이스북에 올리곤 했다. 상민은 하루 한두 개 정도의 뉴스 링크를 올리며 지인들과 대화를 나눴고 너는 그것을 눈팅하다가 카톡 대화의 주제로 삼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페이스북 페이지가 깨끗했다. 2015년에 바꾼 프로필 이미지만 전체 공개로 보일 뿐이었다. 상민은 너를 ‘먼 친구’로 바꾸어 설정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상민이 마지막으로 보낸 "그만 하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한마디는 불씨에 기름을 붓듯 너의 감정을 격하게 만들었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상민의 마음을 긁는 13개의 카톡을 쏟아내게 했다. 이것이 상민과의 마지막 대화가 되는 것인가. 아니지. 이것은 대화조차 아니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선명히 박혀있는 1은 주인을 잃고 네트워크를 떠도는 수취인 불명의 우편물이 되어 너를 괴롭혔다. 지난 새벽 너의 본심을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올리며 하나씩 곱씹었다. 독하고 못됀 말들이 꼬리에 1을 달고 있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상민이 확인해 본다면, 이것이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 돼. 차분한 마음으로 카톡 메신저 창에 글자를 적어 나갔다. "나 차단했니?"너는 다시 지운다. 이런 말을 하는 건 너무 없어 보여. 차단을 예감하고도 카톡을 보낸다는 걸 인정하는 거잖아? 그리고 다시 신중하게, 너는 지금 감정의 새벽을 지나 이성의 아침에 와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한 글자 한글자 적어 1을 보탠다. 너는 끝까지 전화번호를 눌러 상민과 통화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