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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23. 22:11

옥타비아 버틀러, <저녁과 아침과 밤>을 읽고.


린과 앨런은 서로 사랑하고 있으며 같은 병을 앓고 있다. DGD는 일종의 유전병으로 자신이나 타인의 신체를 심각한 장애 또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훼손한다. 하지만 린에게서 나오는 페로몬이 그 질환의 증세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둘은 더이상 같은 병과 싸우는 동지의 입장일 수 없게 된다. 린을 보고 편안함을 느꼈던 앨런은 그것이 서로의 작용-아마도 사랑-에 따른 것인줄로만 알았기에 충격에 빠진다. 앨런은 꼭두각시가 되어 그 저주받을 냄새에 조종당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단 하나의 유전자가 병에 걸려도 우리는 삶 전체를 사로잡힌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부추기거나 좌절시키는 것이 완전히 내 자신의 의지일까. 혹시 유전의 작용은 아닐까. 흔히 타고난 운명이나 기질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몸에 박힌 오만개의 유전자로 이미 정해진 건 아닐까.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면, 나의 유전자는 누구와는 징그럽게 반목하과 누구와는 홀리듯 섞여들 것이다. 누군가에겐 완전히 지배당하거나, 군림할지도 모른다. 질병처럼 여겨지는 나의 면면들을 누군가로 인해 고요하게 만들 수 있다면, 나는 내 의지로 강력한 타인의 유전자를 붙들어 내 곁에 두고 싶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를 바라는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