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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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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들에게 먹일 구충제와 같이 사는 개들에게 먹일 사상충 약을 잔뜩 사들고 동물약국 문을 막 나서는데 느닷없이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다. 우산이 뒤집어지고, 하늘이 묵직하게 울어댔다. 석연치 않은 날씨에 남은 일정 두 가지를 모두 취소하고 귀가를 서둘렀다. 백수가 이럴 땐 좋구나 생각했다.


미어터지는 버스정류장을 뒤로하고 결국 이대역으로 내려갔는데 여기도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어디선가 또 사고가 났던 모양이다. 엄지손가락으로 2호선 열차 사고 뉴스를 뒤적이며 홍대입구역 안내방송에 따라 고개를 들었더니, 지하철 문이 좌우로 열리며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서 있는 모습이 눈이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이들 교복 앞 섬에 노란 리본이 달려있는 것을 마주하고는 왈칵하고 눈물을 쏟고 말았다.


주책맞게 나이가 들어 할매가 되려하는지, 그렇게 지하철 역사 구석에 서서 벽을 보고 훌쩍거리다가 이게 뭐 하는 청승인가 싶어 침을 꿀꺽 삼키고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는 지금 드는 이 창피함은 무엇에서 오는 감정일까 하루 종일 생각했다.


나는 여자대통령도 아니고 해운사 사장도 아니고 티비조선 기자도 아니고 뭣도 아닌데, 나는 갑자기 지금 이 자리에서 사라져도 뉴스에 나오지 않을만큼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인데, 오늘 부로 행불자가 되어도 나의 행방을 궁금해할 사람이 몇 십 명 정도 되려나 싶은 가장 보통의 존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해 분노만 내뱉기에는 어딘가 미안한 마음이다. 왜냐면 나는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고작 십 몇 년을 살다 비명에 갔을 그 아이들에 비해 더 많이 살았고 그만큼 이 세상이 이렇게까지 나빠지는 데 기여한 바가 있을 것이다. 교통법규를 지키고 남한테 못할 짓 안하고 나름대로 나쁘지 않게 산다고 살아왔지만, 이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이 세상이 나빠지는 데 조금이라도 보태거나 방관했을 것이 분명하다.


길냥이에게 뭐 하러 밥을 주느냐는 사람도 있고, 아이고 정말 좋은 일 하시네요 하는 사람도 있다. 한 달에 단 돈 몇 만원 들여 사료를 사고 적은 기부금을 보내고 하는 일들은, 전부 다 나를 위한 것이다. 약자가 약자를 도움으로써 위로 받는 일. 아마 힘 있고 가진 거 많은 이들은 이게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뉴욕의 노숙자들이 개를 기르는 것으로 삶의 의지를 되찾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이만큼 나빠진 것에 대해 일말의 기여를 했을 수 밖에 없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나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을 위로하는 방법은, 컴컴한 극장에 앉아 수퍼히어로 영화를 보는 것일 수도 있고 길거리에 버려진 동물들에게 밥을 주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내가 밥을 주지 않으면 그 날은 굶을 수 밖에 없는 불쌍한 목숨들, 결국은 사람 손에 의해 버려졌을 생명들에 대한 미안함을 그들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작은 위안을 삼는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누군가의 별이 되어주기 위해 떠나간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