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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6 17:05

1.
'디즈니랜드하고요, 노천온천이요.'
일본의 뭐가 좋냐고 물었을 때 나의 대답을 듣고 S씨는 나더러 중국인 관광객이냐고 했다.
목욕을 좋아하는 동심을 짓밟지마.
사실 약국도 꼭 들른다.
종아리파스 하앍..
종아리와 발바닥에 붙이는 파스인데 힐 신고 많이 걸은날 밤에 이걸 붙이고 자면 굿이다.
이거 말고도 오백원짜리 크기의 동그란 파스가 있는데 붙이면 담배로 지진거 마냥 불타오르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력하다. 일본은 파스도 잘 만드나봐? 하여간 오늘 아침에도 종아리와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 수면바지까지 입었더니 침대에 결박된 것도 아닌데 잠이 깨도 2시간 동안 이불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노벨평화상 경쟁후보로 수면바지와 종아리파스를 추천한다.


2.
내가 집에서 목욕했다는 표현을 쓰자 N씨가 보통 목욕이라고 하면 바구니 들고 때 밀러 동네 목욕탕에 가는 간지고
집에서는 샤워한다고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음. 일리가 있다.
내 꼭 성공해서 3인용 대형 월풀이 놓인 욕실을 소유하고 당당하게 '집에서 목욕'이라는 표현을 쓰리라.
어쨌거나 목욕인지 샤워인지 그냥 빨개벗고 뜨거운 물에서 노는걸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번 규슈 여행에서도 느낀건데 난 목욕을 정말 좋아하는 거 같다.
새벽 6시 반에 일어나서 목욕하고 저녁 먹기 전에 목욕하고 자기 전 밤 11시에 목욕했다.
물 속에서 자고 싶었는데 아가미가 없어서 아쉬웠을 정도니 내 목욕 사랑이 어느 정도냐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가 나한테 뭐 좋아하냐고 물어봤으면 좋겠다 목욕이라고 말하고 싶어 안달난 상태다.
다만 그것이 이러저러 목욕제와 요런저런 바디제품을 꼼꼼히 쳐바르며 피부를 가꾸는 신여성의 것이 아니라 그저 뜨거운 물에 들어가 앉아있다가 나와서 대충 물기를 닦으며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어찌보면 홋카이도에 사시는 80세 야마모토 할아버지의 취향과 닮아있는지 모르겠지만 되려 이것이 목욕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의미하는게 아닐지.


3.
현미와 서리태는 안전한데, 흰쌀통에 벌레가 생겼다. 까만 쌀벌레.
아 짜증나.
사과를 한알 넣어놨어야하는데 깜빡했다.
조금 아까 이 집에서 첫 밥을 지어먹으려고 이사 오고 한번도 안열어본 쌀통을 야심차게 열었다가
꼬물대는 쌀벌레새끼들때문에 당황했다.
쌀 씻으면서 골라잡으려니 정말 짜증.
쌀벌레 그냥 드세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고싶다.
콩이거니 하고 아무 망설임 없이 먹을텐데.


4.
웹일을 두군데서 해본적이 있는데 각각의 경험이 극과 극이라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첫번째 회사에서는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다 같이 만날 야근하고 철야하면서도 얼굴 한번 안 붉히고 서로 으쌰으쌰했다.
이런 희귀한(!) 경험 덕분에 두번째 회사에서 받은 충격은 내 직장인생 최초로 '포기'라는 단어를 소환해냈다.
문제의 개발자들은 일단 출근과 퇴근이 모호했다. 야근하고 지각하고 야근하고 지각하고. 늦게 와서 삐대다가 점심먹고 졸다가 일 좀 하는둥 하다가 6시되면 짱개 먹고 와서 한시간 동안 스타크래프트하고 담배피우고 야근하고 지각하고 야근하고 지각하고. 일과 thㅏ생활, thㅏ생활과 일의 분리가 똑바로 되지 않는 사람 치고 일 똑바로 하는 사람 못봤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변명이 있겠지만, 일할 때 일 하고 쉴 때 쉬어줘야 사람도 기계도 잘 돌아간다는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이트들을 열개가 넘게 클라이언트로 모시고 있던 상황에서, 그 회사에서 기획자로 일하는 동안 한 일의 8할은 엑셀파일로 개발자가 빵꾸낸 좆같은 일정 다시 짜고 ppt기획안과는 다르게 나와버리는 사이트때문에 갑한테 가서 비굴하게 굴었던 기억 뿐이다. 디자인이 좆같아도 개발이 빵꾸나도 모두가 기획자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는 있지만 내가무슨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부처님 가운데 토막도 아니고 각 안나오는 인간들 데리고 지지고 볶는데도 한계, 이 인간들 어디 지게가 있으면 짊어지고 산꼭대기에 내다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러프하게 줘봤자 일정을 단 한번도 지킨적 없는 개발자. 첨에 일정 잡을 때 같이 잡아도 나중에 배째라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 다 떠나서 뭘 하자고만 하면 그냥 하던대로 하지? 옛날에 비슷한 사이트 한적 있는데 그런식으로 어떻게 안되나? 이런 말뿐이던. 나도 기획일 재미지게 하고 싶은데 뭐만 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이거 개발되는걸까, 개발자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이래버리니 정말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술도 맥여보고 사장한테 대들어도 보고 별 짓 다해서 인간적으로 친해져보기도 했지만 일을 못하는건지 안하는건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들인건지, 하여간 안되는건 안되는거라는 교훈만 얻었다. 나더러 피곤하게 살지 말라고 하더라고. 이 회사가 부자는 아니지만 망할 일은 없기때문에 그냥 있는듯 없는듯 지내는게 맘 편하다나.
그렇게 속을 푹푹 썩다가 그 많은 수퍼갑 중에 s전자 게임사업부와 일했을 때, 거기 있던 단 한명의 똘똘한 개발자는 우리 개발자들은 일주일을 주면 팔일만에 간신히 내놓는 일을 아침에 요청하면 오후에 만들어 내놓는다는 사실을 알고 개충격에 빠졌다. 내가 여기서 이런 새끼들이랑 썩어서 커리어고 나발이고 뭘 얻을 수 있을까? 위궤양? 
군대에서의 고문관 공식은 직장에서도 맞아떨어지는거 같다. 할려고 용을 쓰는 인간들만 나가 떨어지는 법. 정작 엑스맨새끼는 스트레스 없이 잘 산다. 지금은 또 누구 피를 말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긴 뭐 나처럼 예민한 인간 아니고 끼리끼리 비슷한 인간들끼리 일하면 그곳에도 평화가 깃들겠지. 하여간 건투를 빈다.



5.
금요일 밤에 <황해>를 봤다.
내가 극악무도한 년인건지, 사람들이 떠들어댄만큼 잔인한지는 모르겠고. 하여간 피 칠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피해대상이 여자여서 그런지 <추격자>쪽이 훨씬 소름끼치고 무서웠다.
다만 그렇게 슬픈 영화인줄 모르고 마음의 준비 없이 봐서...불쌍한 구남이때문에 자꾸 눈물이 났다.
사람 죽이는게 쉽지가 않을텐데 뒤늦게 적성을 찾았나싶게 잘 죽이고 다니는 구남이.
머리도 똘똘하고 근성도 있어서 다른 적성을 찾았더라면 인생이 그렇게 딱하진 않았을텐데 안타까운 구남이.
이 땅의 모든 구남이들은 이 추운 겨울을 어찌 나고 있을지..가슴이 먹먹하다.
하정우는 어째 그래 그런 역이 잘 어울리까.  
<비스티보이즈>도 그렇고 <멋진하루>도 그렇고
옆에 있으면 인생 말릴게 분명한데도 그 때끈한 쌍커플진 눈매를 보고 있으면 순간
'저 남자 순대국에 쏘주 한잔 사주고 싶다'는 큰일 날 생각이 든다.


6.
영화를 보고 치맥을 하자는 제안을 뿌리치고 내 방에서 놀자고 꼬셨다.
집 앞에서 을지로 골뱅이를 사다가 축구는 틀어놓기만 하고 꼬소한 에딩거랑 먹었다.
검정스타킹 신은 허벅지를 비비면서 꼬셨는데, 남자가 안넘어왔다.
후..이런 굴욕감은 처음이야...


7.
이유가 있는데 내가 2010년을 며칠 안남겨두고 갑자기 좀 아팠다.
자꾸 병약한 아픈년 흉내내서 기분 거지같은데, 대체로 씩씩하고 너무 튼튼해서 탈인 사람이라는 점 꼭 말해두고 싶다. 
하여간 그냥 '사람이 아팠다'는 문장을 읽으면 걱정이 되다가도, '이제는 괜찮다'로 이어지면 안심하기 마련.
하지만 그 아픈꼴을 옆에서 본 사람은 입장이 또 다른거 안다.
파주에서 광화문까지 차로 데리러 와줬고, 병원에 데리고 다녔고, 약국으로 뛰어다녔고, 매 끼니마다 뜨듯한 죽을 사다 먹여주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냉장고에 과일도 채워놓고 깎아주고. 밤에 혼자서 아플까봐 평일인데도 옆에서 자고 가고 그랬다.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 중에 안바쁜 사람 없겠지만, 그래도 바쁘기로는 평균치 이상으로 바쁜 사람인데. 미안했다.
아픈거 잘 참고, 사실 일부러 참는다기보단 고통을 이기는 능력의 수치가 남들보다 내가 좀 높은거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가령 손가락 정도는 마취 없이 꼬맨다던지, 기타 병원에서 하는 행위들, 살꼬매고 이뽑고 주사놓고 하는 것들에 대해 두려움이 거의 없다던지, 왜냐면 별로 안아파 참을만 해. 솔직히 말하자면 나 아픈거 좀 좋아한다? 힝=ㅅ=
하여간 어릴 때부터 감기든 생리통이든 뭐든 길에서 졸도를 할 정도까지 가봤어도 아프다고 징징대고 무슨 일을 하다가 힘들어도 옆에 사람한테 짜증내고 이래본 기억이 단 한번도 없다. 왜 그렇게 생겨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앓는 소리하는 능력이라곤 날 때부터 거세된듯 살았다. 이 남자가 나를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아무리 힘든여행 험한데로 끌고다녀도 찍소리 안하고 오히려 즐기는 거.
그런 애가 너무 아프다고, 죽을 거 같다고, 엉엉 울고 방을 기어다니고 길에서 토를 하고 그랬으니 보고 많이 놀랐을거 같다.
조금 후회된다.
아픈사람 취급당하면서 꼬셔도 안넘어오게 만든게 후회되는건 아니구요,
자꾸 날 걱정하게 만든게 후회된다.
'너 이제 안아파? 그래도 몸 좀 더 회복되고 그러면...나는 2월 쯤에 춘천 여행가자고 할려그랬지.'
알았어요 네.
나 춘천 여행 간단다 야호.

하여간 춘천 여행 가기로 한 건 자랑.
그렇게 아프고 나서 3키로 찐건 안자랑.
죽 칼로리 씨발..


8.
으악.
방금 전에 남자한테 보낼 문자를 언니한테 잘못 보냈다.
밥은 챙겨 먹었냐는 일상적인 내용 끝에 마지막 썼다 지운 한 문장을 지우지 않았더라면...............간담이 서늘하다.

며칠 전에 카메라 가방(이라고 쓰고 딜도와 바이브레이터가 왕창 들어있어 섹스키트라고 읽는)을 정리하다가,
콘돔이 세개 나왔는데 그걸 안까먹고 쓰려고 화장대 위에 올려놨고 그걸 며칠 전에 남자도 봤다.
아까 낮에 날은 춥고 밖엔 나가기도 싫고 마침 무료한 일요일 오후라서, 나 지금 그 콘돔 하나 쓰겠다는 문장이었다.
야 이걸 보냈어봐라, 불법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후아- 자매 사이에 뻘줌돋을 뻔 했다.
하여간 사람은 매사에 조심하고 신중해야한다. 큰 교훈 얻었다.
덕분에 기분이 싹 가셔서 콘돔은 쓰지 않았읍니다.


9.
현미와 흰쌀과 서리태를 1:1:1로 넣고 밥을 지었는데 방금 완성.
아 시발 왜 이렇게 많이 했어 혼자 먹을걸.
나는 어릴 때부터 잡곡밥을 좋아해서 흰 쌀보다 잡곡의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아하고 어디서 콩밥이 나오면 콩만 골라 먹는 지경이었다.
교회에 다니면 점심을 주는데, 식판을 든 꼬마여자애가 콩 많이 주세요! 하고 외칠 때마다 집사님들이 날 얼마나 예뻐했던지.
내가 쌈닭같은 면모의 기 쎈 여자로 보인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겠으나 은근히 어른들 사이에선 애교많은 막내딸로 통한다.
지금도 친구들 부모님한테 어머님 아버님 소리 입에 짝짝 붙게하면서 팔짱 끼고 애교떠는덴 날 당해낼 자가 없다고.
지금까지 남자친구를 많이 사귀어보진 않았으나(응..?) 하나같이 모두 당신 아들보다 날 더 좋아했다고.
심지어는 스무살 때 수능 며칠 앞두고 옛날 남친이 어머니가 들려 보낸 찹쌀떡 선물을 들고 쭈뼛쭈뼛 날 찾아오기까지 했는데...힘든 공부 다 끝났으니 다시 잘 지내보라는 취지의 카드도 있었다. 물론 걔가 나 빼곤 다 병신같은 년들만 사귀고 지 엄마 속 썩인 전적이 화려한데다가 나 만날땐 잠깐 정신차리고 대학가겠다고 공부하는 척 좀 했던게 크겠지만, 어머니, 걔는 지독한 날라리 태생이라 저랑은 될 수가 없어요, 라고 답장을 써 보낼 수는 없는지라 그냥 감사히 받기만 했다. 아참, 그러고보니 걔가 이승환CD도 같이 줬는데 혹시 나랑 다시 잘 해보고 싶었나?라는 생각이 12년이 지난 뒤에 문득 드네.
하여간 그게 다(어른들이 예뻐하는 이미지) 어릴 때 교회를 다녀서 그런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십년 이상을 매주 꼬박꼬박 교회 나오지 앞에서 나가서 찬송도 잘 부르지 학교에선 공부 좀 한다 그러지 내가 독서실에서 수학 문제 안풀린다고 빡치면 친구놈한테 삐삐쳐서 쇼바 잔뜩 올린 숑카 뒤에 타고 화양리를 한바퀴 돌며 스트레스를 푸는지 어쩌는지 알 턱이 없던 어르신들께선 항상 김집사님네 둘째딸은 어찌 그리 이쁘고 똘똘하냐며 며느리 삼고 싶어 안달이었단다. 그 때 그 집사님들이 지금 날 보면 어떤 표정 지을지 헤헤. 저 공부는 고3때 망했고요, 음주가무 즐기다보니 어느덧 혼기 꽉 찾어요 집사님. 헤헤.



10.
목욕 특히 일본 온천의 효능을 설명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구린 화질의 017 폰카로 찍은 얼굴을 공개하는 바이다.
구린 화질이라 티가 안나지만 세수하고 로숀도 안바른 상태에서 내 얼굴에 광이 나는 신묘한 체험은 단언컨데 허경영도 줄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목구비를 보지 말고 피부 상태를 보라고 제발.


 

 도자기 피부 그 3일 천하의 시작. 광이 난다 세상에.



                                                                      화장도 졸라 잘 먹는다



                                                           기분 탓인가? 벌써 빨간게 올라오는데?



 



                             요즘엔 아플 때도 셀카를 찍어줘야 진정한 허세녀라고 한다. 그래서 와병 중에 찍어보았다.
                             나는 날 얼굴일 때 엄청 순해보인다는 근자감을 갖고 있다. 순하기가 순도 99.9의 순한 여자.






                                   하지만 순하고 예쁘기론 지구상에 까미를 따라갈 생명체가 없다.
                                                      전기 스토브 앞에서 코 골고 자는 까미.